외국의 왕정에 대한 단상.

영국을 위시한 북유럽 등의 여러 유럽국가들이 여전히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그 오랜동안 왕정이 유지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만만치 않은 역사를 지닌 프랑스와 러시아가 왕정을 포기한 것은 왜일까?
...
프랑스와 러시아 양국은 공통적으로 혁명을 겪었다.
시기적으로는 다르지만 혁명에 의해 왕정이 무너지는 것은 동일했다.
그리고 여러 정치체제의 변화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영국 등의 왕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은 어떻게 지금까지 왕제가 가능했을까?

북유럽국가들의 경우는 재빨리 사회주의경제를 도입하였다.
영국은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사회복지 분야가 같이 발전했다.
극히 현대적인 사회복지의 역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복지법률과 시스템은 영국에서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왕정체제와 사회주의경제, 혹은 강력한 사회복지시스템이 절묘하게 악수하면서
서로 공존이 가능하게 된것이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왕제유지국가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공존의 타이밍을 놓친 프랑스와 러시아는 결국 왕정체제의 몰락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모든 국가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식이 아닌가 싶다.

빈곤의 그늘이 깊어지면,
그리고 그 그늘의 그림자가 확대되면,
필연적으로 사회는 계층적 균열이 일어나게 되고, 급기야는 통제불능의 계급투쟁공간이 된다.
물론 막대한 희생도 동반되고....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꾸준히 사회복지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우리는 과연?
Posted by 탐라공화국

그동안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마침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로 결정하고
2급의 마지막 관문인 사회복지현장실습을 시작했다.
제주가톨릭사회복지법인 산하의 "일배움터"에서 실습을 시작했는데
주요 업무부서는 <주간보호센터>로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당겨서 아침 8시에 도착해서 사전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각 기관과 시설을 둘러보며 간단한 브리핑을 받았다.
오전부터 시작하여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소화하고
나름대로 일지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돌아온 오늘, 첫날이라 그런지 너무 피곤하다.
이미 짜여진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시설의 운영속에 갑자기 날아든 이방인같은 존재였다.
시설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시고 관심있게 실습을 도와주셨지만
낯선 일상에 불쑥 끼어드는 신세라서 그런지 매사에 허둥지둥이었다.
하루 8시간씩 주 3일, 5주간 총 15일의 첫날이었다.
좀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공부하고 어울려야겠다는 첫날의 결론.
실습이 끝나면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일지 외에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한다.

격주로 2시간씩 진행되는 스터디그룹과, 14주간 월요일 저녁마다 2시간씩 있는 제주교구의 사회교리학교 참가,
그와 병행되는 4학년 2학기의 수업들, 리포트 작성, 게다가 졸업논문까지..
2011년의 1학기는 긴장의 연속이 될 수 밖에!
Posted by 탐라공화국


 상황 #1

  지역농협의 양곡저장창고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조합장을 위시한 조합간부들이다. 모두들 벌개진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이윽고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선 그들은 거대한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진 쌀가마들을 점검하고는 즉석 구수회의를 연다. 밑에 있는 부분들이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조합사무실로 돌아온 간부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썩은 쌀 문제의 대책을 논의한다. 조만간 있을 자체 감사는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지만, 몇 개월 후 들이닥칠 중앙 감사팀의 문제는 어찌한단 말인가. 회의는 내부 입단속과 차후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상황 #2

  뜨거운 폭염 밑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레미콘 차량을 쇠사슬로 묶은 가운데 레미콘 기사들이 노동조건 개선의 요구사항들을 외치고 있다. 하루에 평균 6회 운행하는 것도 벅찬데 새로이 벌어진 도로공사장 작업은 하루 8회씩의 운행을 요구하고 있다.

  지입차량이라는 조건 때문에 그들 기사들은 레미콘 회사에서 독립적으로 자체 운영하는 개별적인 사업자로 되어있지만, 실제 업무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각 탕별로 책정된 요금도 지난 번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이라서 타산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루 2,3회의 증편 운행은 물론 적정량 이상의 물타기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지입차량의 기사라는 신분 때문에 노조를 조직하지 못하던 그들이 급하게 노조를 만들고 심각해진 노동강도에 저항하고 있으나 노동부에서는 노조를 만들 수 없는 신분이라고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법적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모든 근무조건을 회사에서 정하고 하루의 근무 모두가 회사의 관리감독 하에 있음에도 노동부 지방사무소 근로감독관은 오직 지입차량이라는 문제만을 부각시킨다.

 
상황#3

  3년 전 지역 학교 운동장에서는 국회의원 합동유세가 한창이다. 새로운 도로의 개설과 포장사업을 공약으로 외치는 후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다. 온갖 공약을 내세우며 그는 이번 선거의 승리를 확신한다. 그리고 그는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당선 후 지역숙원사업들을 추진하던 중 자신의 공약사항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그리고 군청 공무원들을 접촉하며 도로사업을 추진한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지자체에서는 목하고민에 빠지고 만다. 회의들이 수없이 이어지고 마침내 편법을 동원하기로 결정한다.

  가장 최소한의 추경예산과 예비비를 동원하여 관급공사를 주로 독점하고 있던 지역 레미콘 회사에게 협조를 구한다.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레미콘회사가 시공업자로 결정되는데, 이는 차후 다른 공사에서 보상적인 조치가 취해지리라는 담당공무원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레미콘 회사는 하청관계에 있는 지입차주들에게 형편없는 금액을 제시하며 도로공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한다. 지입차주들은 그 다음에도 계속 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공사를 시작한다.

 
상황 #4

  지역농협 조합장과 간부들이 지역국회의원과 술자리를 하고 있다. 이른바 접대술이다. 여흥이 끝나갈 무렵 조합장이 국회의원에게 창고의 썩은 쌀 문제를 상의하고 해결방법을 부탁한다. 잠시 생각하던 국회의원은 도로사업 관계 공무원을 긴급 호출하고 이번에는 3자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의논을 한다. 결론은...

  지자체에서 지급할 도로공사 대금을 지역농협의 양곡을 구입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양곡권을 레미콘회사에 현금대신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농협은 썩은 쌀을 판매해버린 것이 되고.... 3자는 환하게 웃으며 건배를 하는데, 뒤에서는 조합간부들이 국회의원과 공무원에게 부지런히 봉투를 건네고 있다.

 
상황 #5

  레미콘회사

화를 참지 못하는 회사간부들의 모습.오늘 공사대금 대신 받아온 양곡권 때문에 일차 난리가 있었지만 그건 약과였다. 하는 수 없이 양곡권으로 인수해온 농협쌀이 대부분 썩은 쌀이었기 때문이다. 강력하게 항의해봤지만 능청스런 조합간부들의 태도도 그렇고, 군청 담당공무원과 국회의원 비서까지 나타나서 막무가내로 상황을 덮어버리는데야...

  그렇지 않아도 지입차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판에 이번에는 회사 자체까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판국이다. 원래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받아와서 지입차주들 등골만 빼도 회사로서는 별반 손해날 것도 없는 공사였고, 차후 대형 관급공사에 대한 사전 약속까지 받아놓은 터라 실제로는 수입이 짭짤한 대차대조표가 약속된 공사였다.

  그러나 이제 회사도 지입차주들에게 주는 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거기다가 저 수많은 썩은 쌀가마들을 어찌 처리한단 말인가~

결국 썩은 쌀이 도착한 운명의 종착역은 풀공장!!!

--- 1987년 여름 경기도 어느 레미컨회사앞에서 지입차주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상황의 해결을 위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터져나온 여러가지 정보들을 취합하여 저 개인적으로 추정 논리를 만들어봤던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증거는 없고 정황정보를 종합한 결과를 개인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이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봤으면 해서 오래 전 이야기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이야기같은 스토리를 하나 올려봅니다 ---

 

Posted by 탐라공화국

며칠 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깜놀~
변인식 영화평론가협회장..결국 그 길로 가셨구나.
신일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고1때 만난 국어선생님이 변인식선생님이었다.
1971년, 그리고 1년간의 병원살림을 끝내고 복학한 72년에도 역시 변인식선생님이 국어담당이었다.
일주일에 2시간을 맡은 변인식선생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처음 1달간은 지루한 리딩의 고수였으나 그 이후 국어교사 변인식은 본색을 드러낸 교탁위의 명연기자가 되었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시작된 영화이야기는 마침내 국어시간 내내 영화액션이 교탁위를 점령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홍콩액션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정상은 외팔이였다.
외팔이, 돌아온 외팔이 등 속편을 이어가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외팔이 영화시리즈가 신일고등학교의
국어시간을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던 것이다.
변인식선생님은 국어시간 시작과 동시에 영화 스토리를 이어갔다. 지난 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시작 멘트.
그리고나면 50분 내내 교탁에서는 붕붕 날아서 옆차기를 실연하고, 주인공 외팔이의 성대모사를 곁들인 대사 실연까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반아이들은 다른 수업중에도 다 눈치채곤 했다. 쟤네들 국어시간인가보다~ 하고.

아아..시간은 그렇게 잘도 흘러갔더이다. 1학기 내내 외팔이의 흥미진진한 복수극 스토리에 빠져들고,
교탁위를 날아다니며 외팔이의 검술연기를 재연해보이던 변인식 선생님과 함께.
그리고 2학기가 되었고, 돌아온 외팔이 시리즈는 막판의 절정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바야흐로 돌아온 외팔이가 끝나고 이번엔 어떤 영화이야기로 할까 하는 변인식선생님의 말쌈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드디어 경악했답니다.
"선생님 우리 국어수업은 언제 해요?"
이미 2학기기 시작되고도 1달여가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국어책을 펼친 변인식선생님 왈~ 우리 어디까지 공부했냐?
"10분의 1도 안했어요~" "그렇게 안했나..?"

결국 시험 빼고 추수감사절 빼고 등등..1년 동안 3개월이 채 못되는 시간만 국어수업을 진행했다는,
그것도 대충대충 뛰어넘으면서(진도는 끝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까) 겉핥기로 읽어대면서
그렇게 초스피드로 국어책 한 번 읽는 걸로 우리의 고등학교 1년 국어수업은 종료되었다.
영화에 미친 선생님과 공부 안하고 수업때우는 재미에, 나중에는 진짜 영화에 몰입되어버린
학생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나중에 고학년에 진급하면서도 이따금 변선생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영화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분이었다.
나보다 3,4년 선배되는 명계남선배도 변인식선생님의 막강한 영향력에 굴복했고, 끝내 연기자의 길로 나선걸로 알고 있다. 동기졸업생인 김성용은 자기사업을 하면서도 여전히 각종 사극과 법정드라마의 변호사역 등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을 자기의 삶으로 사랑하며 살고 있다.

참 특이한 선생님이었지만 공부에만 침몰되는 학교수업이 아닌 사람냄새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할 때
빠짐없이 기억나는 변인식선생님이다. 많이 늙으신거 같던데...어느덧 우리 나이로 73세시니.
기회가 되면 만나뵙고 우리와 함께 웃고 떠들던 그날의 외팔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탐라에서 백영민
Posted by 탐라공화국

몇년전 신문의 부고기사에서 성악가 윤치호선생의 부음을 접했다.
바리톤 성악가로 유명했고, 쇼맨쉽도 대단했던 분이다.

1968년 서울 수유리의 신일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난 음악선생님이 윤치호선생님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시원한 음색,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솔직한 표현으로 다가서던 터프한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음악수업이 아이들에게 화제였다.
일주일에 1시간인 음악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반의 주번은 음악실로 달려가
당시로는 천문학적 금액의 시가를 자랑하던 아까이 녹음기를 두명 이상이 낑낑거리며 교실로 운반해왔다.
그 아까이 녹음기는 롤테잎을 걸어서 음을 출력하는 것이었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수업종이 울리고 5분은 지나야 나타나는 윤치호선생님.
교탁에 올라서면 테잎을 녹음기에 걸고 학생들을 향해 일갈을 날린다.
모두 책상에 엎드리고 잘 놈은 자고 들을 놈은 눈감고 입다물고 듣는다. 잡소리는 절대 불허!
우리 반의 경우는 대개 4교시, 즉 점심시간 직전 타임이고 아이들은 좋아라 잠을 청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중학교 3년동안 윤치호선생 치하에서 음악시간을 보냈다.

이후 이른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면 모두 귀에 익숙하다. 심지어는 멜로디를 일부 따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곡이라도 곡명도 작곡자도 잘 모른다. 그러나 들어본 곡들이다.
이게 윤치호선생님의 음악교육방식이었다.
음악을 전공할 것도 아니면 몸으로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음악선생님으로 만난 한태근선생님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첫 수업시간에 오선지가 그려진 칠판에 몇명씩 차례로 나와서 화음 등의 음표를 그려넣게 했다.
나를 비롯한 절반의 아이들은 완전 우물쭈물, 우왕좌왕~
너희들 중학교때 윤치호선생님 반이었냐? 네에~ 그냥 내려가!!

화성악의 기본도 모르고 악보도 읽을줄 모르지만 그래도 윤치호선생님 치하의 우리들은 음악을 들을 줄은 알았다.

또다른 추억,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윤치호선생
4교시에 음악이 걸린 반은 도시락 수호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당시 시설이 대빵 좋은 신일중고등학교는 보일러 시스템의 라지에이터 난방이었다.
각 교실마다 대형 라지에이터 두개씩이 있는데 겨울이면 도시락을 그 위에 올려놓고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음악시간에 아이들을 엎어뜨린 윤치호선생은 언제나 그 도시락들을 살금살금 점검하곤 했다.
물론 괜찮은 메뉴는 이것저것 시식도 하면서..자기 도시락이 털리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아이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하도 당하니까 나중에는 음악 시간 시작 전에 도시락을 감추는 사태까지..ㅎㅎ

참 재미있는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같은 친구처럼 놀았다.
남학생들한테 살짝살짝 여자의 신체적인 비밀까지 이야기하는 위험한 도전도 마다않는.
그러다가 연말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기투표에서 자기가 3등밖에 못했다고 노골적으로 아이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천진난만함이라니~

짙은 눈썹, 선이 굵은 얼굴 모습과 웅장하고 큰 울림이 있던 목소리.
학교 졸업 후 텔리비젼을 통해서나 이따금 뵙던 모습인데 이제는 사진에 있는 옛날 젊은 사진뿐이다.
보고싶은 윤치호 선생님.

탐라에서 백영민
Posted by 탐라공화국

1968년 2월,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강북구 미아 몇동쯤 될텐데, 미아리고개 넘어서 우이동으로 가다가 수유리 못미쳐 삼각산 기슭에 있는 삼양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어느덧 40여년의 세월이 지났네..

당시 조개탄을 연료로 하는 난로가 교실마다 난방용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수업 시작하기 전에
반장과 주번(2명)은 들통을 들고가 학교 창고에서 수위아저씨가 반별로 배급해주는 조개탄을 받아다 불을 피우곤 했다. 당연히 수업 시작때쯤 되면 온교실이 누우런 색의 매캐한 조개탄 연기가 자욱하게 되고,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바깥 기온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창문을 열고 환기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배급받는 조개탄의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었다. 하루 필요량의 절반 정도?
중학교 입시(우리는 서울지역 중학교입시 마지막 세대임)를 코앞에 두고도 매일 난방용 연료확보와의 전쟁이었다.
배급주는 수위아저씨 혼을 빼놓고 별도의 작은 들통을 조개탄더미에 쑤셔넣고 되는대로 들고 달아나기.
그러나 요즘같지 않은 당시의 맹추위앞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반은 아침 등교를 30분 앞당기게 된다.
물론 담임선생님도 함께 그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 집결한 후, 줄반장의 인솔 하에 각 구역을 배정받고
땔감 확보작전을 전개하게 된다. 운동장 주변부터 뒷산, 앞산 등등
그렇게 30분 동안 아침 추위와 싸우며 100명 가까운 반친구들이 주워온 땔감들은 대부분이 나뭇가지들.
작전이 종료되면 반나절의 땔감이 확보되어 그날을 버티게 되는 것이다.
추위가 시작되고 난방이 시작되는 11월부터니까 2달간을 꼬박 이렇게 아침전쟁을 함께 치루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트윗픽의 사진을 옮겨놓으면서 조개탄 난로를 보고 문득 그 시절 생각이 나서 주절거려본다.
돌아보면 그리운 1967년 삼양동의 겨울

탐라에서 백영민
Posted by 탐라공화국


@sisyphus79 님의 트윗픽에서 사진 가져옴
Posted by 탐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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