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강북구 미아 몇동쯤 될텐데, 미아리고개 넘어서 우이동으로 가다가 수유리 못미쳐 삼각산 기슭에 있는 삼양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어느덧 40여년의 세월이 지났네..

당시 조개탄을 연료로 하는 난로가 교실마다 난방용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수업 시작하기 전에
반장과 주번(2명)은 들통을 들고가 학교 창고에서 수위아저씨가 반별로 배급해주는 조개탄을 받아다 불을 피우곤 했다. 당연히 수업 시작때쯤 되면 온교실이 누우런 색의 매캐한 조개탄 연기가 자욱하게 되고,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바깥 기온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창문을 열고 환기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배급받는 조개탄의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었다. 하루 필요량의 절반 정도?
중학교 입시(우리는 서울지역 중학교입시 마지막 세대임)를 코앞에 두고도 매일 난방용 연료확보와의 전쟁이었다.
배급주는 수위아저씨 혼을 빼놓고 별도의 작은 들통을 조개탄더미에 쑤셔넣고 되는대로 들고 달아나기.
그러나 요즘같지 않은 당시의 맹추위앞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반은 아침 등교를 30분 앞당기게 된다.
물론 담임선생님도 함께 그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 집결한 후, 줄반장의 인솔 하에 각 구역을 배정받고
땔감 확보작전을 전개하게 된다. 운동장 주변부터 뒷산, 앞산 등등
그렇게 30분 동안 아침 추위와 싸우며 100명 가까운 반친구들이 주워온 땔감들은 대부분이 나뭇가지들.
작전이 종료되면 반나절의 땔감이 확보되어 그날을 버티게 되는 것이다.
추위가 시작되고 난방이 시작되는 11월부터니까 2달간을 꼬박 이렇게 아침전쟁을 함께 치루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트윗픽의 사진을 옮겨놓으면서 조개탄 난로를 보고 문득 그 시절 생각이 나서 주절거려본다.
돌아보면 그리운 1967년 삼양동의 겨울

탐라에서 백영민
Posted by 탐라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