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깜놀~
변인식 영화평론가협회장..결국 그 길로 가셨구나.
신일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고1때 만난 국어선생님이 변인식선생님이었다.
1971년, 그리고 1년간의 병원살림을 끝내고 복학한 72년에도 역시 변인식선생님이 국어담당이었다.
일주일에 2시간을 맡은 변인식선생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처음 1달간은 지루한 리딩의 고수였으나 그 이후 국어교사 변인식은 본색을 드러낸 교탁위의 명연기자가 되었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시작된 영화이야기는 마침내 국어시간 내내 영화액션이 교탁위를 점령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홍콩액션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정상은 외팔이였다.
외팔이, 돌아온 외팔이 등 속편을 이어가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외팔이 영화시리즈가 신일고등학교의
국어시간을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던 것이다.
변인식선생님은 국어시간 시작과 동시에 영화 스토리를 이어갔다. 지난 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시작 멘트.
그리고나면 50분 내내 교탁에서는 붕붕 날아서 옆차기를 실연하고, 주인공 외팔이의 성대모사를 곁들인 대사 실연까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반아이들은 다른 수업중에도 다 눈치채곤 했다. 쟤네들 국어시간인가보다~ 하고.

아아..시간은 그렇게 잘도 흘러갔더이다. 1학기 내내 외팔이의 흥미진진한 복수극 스토리에 빠져들고,
교탁위를 날아다니며 외팔이의 검술연기를 재연해보이던 변인식 선생님과 함께.
그리고 2학기가 되었고, 돌아온 외팔이 시리즈는 막판의 절정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바야흐로 돌아온 외팔이가 끝나고 이번엔 어떤 영화이야기로 할까 하는 변인식선생님의 말쌈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드디어 경악했답니다.
"선생님 우리 국어수업은 언제 해요?"
이미 2학기기 시작되고도 1달여가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국어책을 펼친 변인식선생님 왈~ 우리 어디까지 공부했냐?
"10분의 1도 안했어요~" "그렇게 안했나..?"

결국 시험 빼고 추수감사절 빼고 등등..1년 동안 3개월이 채 못되는 시간만 국어수업을 진행했다는,
그것도 대충대충 뛰어넘으면서(진도는 끝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까) 겉핥기로 읽어대면서
그렇게 초스피드로 국어책 한 번 읽는 걸로 우리의 고등학교 1년 국어수업은 종료되었다.
영화에 미친 선생님과 공부 안하고 수업때우는 재미에, 나중에는 진짜 영화에 몰입되어버린
학생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나중에 고학년에 진급하면서도 이따금 변선생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영화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분이었다.
나보다 3,4년 선배되는 명계남선배도 변인식선생님의 막강한 영향력에 굴복했고, 끝내 연기자의 길로 나선걸로 알고 있다. 동기졸업생인 김성용은 자기사업을 하면서도 여전히 각종 사극과 법정드라마의 변호사역 등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을 자기의 삶으로 사랑하며 살고 있다.

참 특이한 선생님이었지만 공부에만 침몰되는 학교수업이 아닌 사람냄새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할 때
빠짐없이 기억나는 변인식선생님이다. 많이 늙으신거 같던데...어느덧 우리 나이로 73세시니.
기회가 되면 만나뵙고 우리와 함께 웃고 떠들던 그날의 외팔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탐라에서 백영민
Posted by 탐라공화국